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속 단편인 '그냥 꽃이라고 말하지 말라.'에서 '고유성을 허락하라'라는 문장에서 나의 시선이 머물렀다. 여기서 말하는 고유성은 평범한 사물에 각각의 고유성을 부여하게 된다면 주변의 사물들이 나와 특별한 의미 있는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꽃을 관리하는 거부터 시간 낭비라 생각하는 워크홀릭에 빠져 사는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이런 나 자신이 꽃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우리 아들이 아주 어릴 때 미니 포트에 심어진 페퍼로니 화분을 선물을 받은 적이 있었다. 처음으로 받아본 화분 선물이 좋았는지 온 가족들한테 자랑하며, 페페라고 이름도 있다면서 하루에 한 번씩 인사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인가 해맑은 웃음을 지으면서 "꽃은 음악을 좋아해, 음악을 틀어주면 꽃이 잘 자란대, 엄마 안 쓰는 핸드폰으로 페페 옆에 음악 틀어주고 싶어." 이렇게 말을 하는 아들 덕분에 나도 모르게 하나씩 반려 식물을 들이고 다육식물도 들이고 어느 순간 베란다가 식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창가의 베란다 꽃 5장 출처 : y은광>
언제 사진을 찍었는지 아주 오래전에 찍은 것도 있고 각각 다른 날짜에 찍은 사진들일 터인데, 불스아이 제라늄 특히 예뻐했던 꽃이다. 시간 날 때마다 들여다보고, 비료와 흙을 갈아주면서 이름을 불러주며 각 꽃에 고유성을 주었다. 이름을 부르면 뭔가 꽃들과 나를 이어주고 의미가 부여되는 느낌이 들었다. 시험 날짜가 잡힌 바쁜 와중에도 내 나름대로 창가의 베란다 꽃들에 애정을 주고자 노력했었다. 이런 노고를 아는지 비록 아파트 고층이지만 다른 식물들도 예쁘게 잘 자라줘서 고맙고 사랑스럽다.
윌리엄 칼로스 웰리엄즈의 '생각이 아니라 사물 속으로 파고들라' 말처럼 모든 것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구체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바로 당신 코앞에 있는 것을 쓰라'라고 한다. 내가 창가에 베란다 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그냥 꽃이라고 불리는 것보다 나 자신이 더 현재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코앞에 있는 사물에 더 가까이 갈수록,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진실한 모든 것을 사물이 우리에게 더 많이 가르쳐 줄 것이다. 사물에 몰입하고, 깊이 스며들다 보면, 나와 이 사물들은 깊은 관계를 맺을 것이라 말하고 싶다.
나와 함께 하는 사랑하는 가족들, 학원, 체육관, PC, 독서, 산책, 수영, 아침, 사과, 바나나, 학교 등등 작은 것 하나라도 허투루 보내지 말고 감사하기, 나와 연관된 모든 사물을 겸손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바라보기. 모든 사물의 이치도 내가 다가간 거리만큼 있는 것이라 느낀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순수의 전조'에서'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 속에서 천국을 본다"라는 시의 구절이 있다. 어쩌면 내가 보고 있는 한 알의 모래, 거친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한 송이 야생화 들꽃에 고유성을 허락하고 이름을 부여하게 된다면, 우리가 근접하고 있는 사물의 근원에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물과 나와의 관계는 밀접하고 의미 부여된 연관성 있는 관계가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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